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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Deja-vu)란 처음 한 경험인데도 이미 보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일부 심령학계에서는 초능력 현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지각 장애의 일종으로 파악하기도 한다죠. , 과거에 했던 경험이 기억으로 잠재해 있다가 현실과 겹쳐지는 기억의 착오입니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KBS 드라마 드림하이를 이야기하려는데 말머리가 길었습니다. 가요계를 평정하고 안방극장까지 진출한 아이돌 가수들이 주·조연을 맡고 한류스타 욘사마배용준까지 등장한다고 해서 방영 전부터 관심이 뜨거웠죠. 저 역시 그 이유로 955분부터 TV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청자 중 한명입니다. 리모컨을 수십 번 만지작거렸지만 후기를 남기고자 결국 2회 방송을 끝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단어 한 가지가 있더군요. 바로 데자뷔 현상이었습니다.

드림하이는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였습니다. 입시현장인 일반 고등학교에서 스타 사관학교라 불리는 예술 고등하교로 그 무대만 옮겼다고 보면 됩니다. 각자의 개성과 끼로 똘똘 뭉친 고등학생들이 스타의 꿈을 키우며 점차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담을 예정입니다. 하지만 단 2회만 봤을 뿐인데 드림하이의 줄거리와 구성, 캐릭터 설정에는 이전에 봤던 드라마나 영화들이 엿보입니다.

일단 특정 학교에서 벌어지는 고등학생들의 좌충우돌 일기를 담다보니 지난해 방영된 KBS ‘공부의 신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각자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통해서 자아를 찾는 모습은 공부의 신과 참 많이 닮아 보입니다. 두 드라마에서 톡톡 튀는 교사들과 독특한 수업방식을 그리는 방식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일까요. 또 주인공인 고혜미(수지)가 돈 때문에 떠밀리다 시피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가, 진정한 꿈을 찾는 부분도 우연이라고 하기엔 많이 비슷해 보입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그려질 고혜미와 송삼동(김수현), 택연(진국) 등의 삼각관계는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 러브라인과 비슷해 보입니다. 왜 미녀 주인공은 항상 삼각관계의 중심에 서게 되는지. ‘드림하이꽃보다 남자뿐 아니라 숱한 다른 드라마에서 반복하고 또 반복한 삼각 러브라인을 다시 따르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인간의 본능이기에 진화론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요.

캐릭터 부분에서도 약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간 여러 장르에서 이미 여러 번 봐왔던 캐릭터가 눈에 띕니다. 때론 그림자처럼 때론 보디가드처럼 여주인공의 주변을 맴도는 일명 멋진 놈캐릭터 진국과 당돌하고 소신 있지만 약간은 고집스럽기도 한 전형적인 여주인공 고혜미. 또 다이어트에 성공해 미운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승천할 김필숙(아이유) 캐릭터까지. 어느 드라마나 영화 혹은 만화에서 제법 많이 본 듯한 캐릭터들이 나오니 극의 긴장감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요

드림하이를 보는 내내 리모컨을 쥐락펴락 하게 만든 주된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수 출신 연기자들의 어설픈 연기도 한 몫 하긴 했지만 배우의 연기력이 꼭 시청률로 보답하지 않는다는 건 그간 많이 봐온 일이니까 이른바 발연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옛말에 부지런한 물레방아는 얼어붙을 새가 없다.’고 했습니다.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쉼 없이 변화의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지요. ‘드림하이참신함이 아쉬운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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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해를 봤다는 말에 재밌어?”잔인해?”란 질문이 연달아 날아온다. “재밌다.”는 영화에 대한 포괄적인 질문이기에 그렇다 치고 잔인하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맞다, 굉장히 잔인하긴 하다. 슬래셔 영화에 자지러지는 나에게는 2시간여가 너무나 힘들었을 만큼. 하지만 잔인하다.”는 대답만 하기엔 조금 아쉽다. 아니, 영화에 미안하다. 소름끼치게 잔인한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묻히기에는 영화의 내용과 구성이, 배우의 연기가, 내포한 그 의미가 너무나 아깝다.


황해가 잔인하고 처참하고 불편한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추격자보다 훨씬 더 어둡고 그 스케일도 크다. 황해가 내포하는 음울하고 명쾌하지 않은 이미지처럼 중국 연변의 택시 운전사 구남(하정우 역)이 가난한 조선족에서 한국 사회의 극악무도한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안타깝고 비참하고 또 처량하다. 이런 감정과는 별개로, 영화 내내 묵직한 불편함이 가슴을 누른다.

대체 이 불편함은 무엇인가. ‘추격자에서 사회의 약자인 성매매 여성들이 살인자의 손에 희생될 때 느끼던 막막함과 안타까움과는 다르다. ‘추격자에서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희생되는 매춘 여성들을 조명했던 것처럼 황해는 그 대상을 조선족으로 옮겼지만 사기를 당하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도망자 신세가 되는 구남에게는 어쩐지 온전한 동정심이 들지 않는다. 특히나 영화 중간 중간에 나오는 뉴스보도는 우리가 조선족=범죄 용의자로 떠올렸던 바로 그 존재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 불편함의 근원에는 조선족에 대해 내가 가진 편견이 작용했고 이는 약자를 약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집중을 방해했다.



하지만 이 감정을 곱씹을수록 영화를 보는 맛이 달라졌다. 조선족은 영화에서 돈 6만위안에 사람까지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 존재, 개시장에 팔려나온 처량한 신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 황해를 건너다가 이름 모를 죽음을 받는 여성을 차가운 바다에 던져도 누구하나 가엽게 여기지 않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황해는 구남의 비극적인 삶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 해주는 동시에, 차가운 파도만 살벌하게 넘실거리는 그들과 우리의 간격을 표현했다.

황해의 핏빛 잔상이 거둬질 때쯤 불편함의 실체가 보였고 황해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음침하고 처절한 영화임에 틀림없고 분명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이 참 많이도 꼬였다. 그럼에도 황해가 괜찮은 영화라고 평가를 받는 건, 비록 살기 위해서 잔인한 개싸움 판에 뛰어들었으나, 인간답게 살고 싶어 했던 조선족 구남의 마음이 계속 여운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편함이 감독이 의도했던 바로 그 부분이라는 점에 있어서 '추격자'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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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소문이 기정사실화 되는 과정은 참 '재밌다'. 지난해로 기억하는데, MBC에서 소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 퍼지는지를 실험해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다. 실험 내용은 이랬다. 50명 가량의 참가자에게 가상의 강연을 보여줬다. 사실 강연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제작진은 딱 한명에게만 "연예인 00이 죽었다."는 내용을 알려준 뒤 얼마 뒤 이 내용이 어떻게 확산되는 지를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강연을 듣는 도중 실험참가자들은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긴급 타전'했다. 재빠른 이들은 휴대전화기를 꺼내들고 문자메시지로 이 가상의 소문을 측근들에게 전달했다. 기억하기로는 실험 참가자의 절반 넘게 강연이 끝날 때 이 소문을 알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출산, 선행 등 좋은 소식 보다 사망, 범죄 등 악의적인 소문이 더 빨리 퍼진다는 것이다. 사실 악의적인 소식에 더 귀가 솔깃한 건 인간 본연의 특성에 가깝다. 동물 중 유일하게 언어가 발달한 인간은 먼 옛날부터 종족 번식과 생존을 위해 적의 침입 등 치명적인 소식들을 공유하며 진화했다.

하지만 악의적 소문이 급속히 확산되고 팩트란 알맹이가 무시되는 비극을 단순하게 "인간의 본성이니 어쩔 수 없군."이라고 쿨하게 받아들이기엔 악의적 소문의 당사자의 출혈이 너무 많다. 이번에 불거진 가수 타블로의 논란이 그렇다.

올초부터였던 가, 일부 네티즌들이 학력 위조에 대한 악플을 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들이 뭉쳐 안티카페를 만들었고 안티여론은 엄청난 결집력으로 단시간 내에 폭풍처럼 몰아쳤다. 가수 타블로의 음악을 한번도 들어본 적 없거나, 타블로가 속한 그룹이 에픽하이란 사실도 모르는 사람 조차도 "이 자식, 학력 위조했어?"란 말을 입에 올렸다.

앞서 실험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악의적인 소문은 자율성과 발랄함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칼 없는 폭력으로 타블로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단순히 문제제기 차원이 아니었다. 사실확인이란 이름으로 어머니, 이모, 6촌 등 가족들의 글이 인터넷 상에 오르는 등 타블로의 사생활이 끔찍할 정도로 침해됐고 "타블로의 미국 생활이 어땠다." 등의 매우 개인적이고 사실확인도 되지 않은 내용의 글들이 뻔뻔히 올라왔다. 제 아무리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도 이와 같은 치명적이고 야비한 공격에 반 미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안티세력들이 사실이라고 그토록 외쳐댔던 타블로의 학력위조설은 거짓으로 판명됐다. 소문에 대한 실험에서 강연 이후 제작진이 "사실 '연예인 000이 죽었다.'는 건 실험을 위해 만들어낸 말이었다."고 설명하자 실험 참가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죽지 않아서 아쉬운 게 아니라 자신이 믿은 그 소문이 가짜라서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타블로의 안티세력도 그랬다. 간사한 입으로 사람을 반 미치게끔 해놓고 되려 아쉽다는 분위기다. 온갖 욕설과 설로 타블로에게 총과 칼을 휘두르던 안티카페 회원들은 사과 한 마디 없이 슬그머니 탈퇴를 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고 일부 잔여 세력은 확인이 불충분 하다며 아직도 '설'을 지지하는 무지함을 드러냈다.  

용서는 개인의 문제겠지만, 타블로는 마땅히 사과를 받아야 한다. 학력 위조설을 뻔뻔히 옮기고 다니던 안티세력들은 타블로와 그의 가족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주장을 고스란히 기사로 옮겨 이 논란을 확대 재생산한 나와 같은 기자들도 뼈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타블로의 붕괴를 은근히 흥미진진하게 보며 이 논란에 연료를 대준 사람들도 책임은 있다. 

반성을 하고 사과를 해야 발전이 있다. 부끄러운 일일 수록 더 크게 사과해야 한다. 제 2의 타블로 사태가 발생하는 걸 우리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학력 위조 문제제기 자체가 극악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걸 까발리려는 과정이 더러웠다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이 문제를 잘 마무리 지어야 한다. 시작은 몇명의 악플러였지만 그것을 지지하고 타블로의 붕괴를 은근히 즐겼던 우리의 폭력적인 변태성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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